그날 미국 교회에서 제가 버린 것은 선입견이었습니다.
며칠 전, 미국의 한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교회 건물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곳이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에서는 여러 봉사자들이 환한 미소로 차량을 안내하고 있었고, 예배당 안에는 처음 온 사람도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진 간증은 참 은혜로웠습니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들으며 제 마음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올라오신 목사님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팔에는 문신이 있었고, 모자는 뒤로 돌려 쓰고 있었으며,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양 문화에서 자란 저에게 목사님의 모습은 익숙한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교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설교 제목이 ”사람을 기쁘게 & 하나님을 기쁘시게“ 였는데, 목사님의 모습은 안보이고 말씀만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진심,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려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 목사님은 굳이 이런 모습으로 강단에 서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문신이 있어서…’
‘나는 이런 모습이라서…’
‘내 과거를 알면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 때문에 교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혹시 목사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전 보았던 한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암 치료로 머리카락을 모두 잃은 친구를 위해 같은 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머리를 함께 깎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괜찮아.“라는 말보다,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
라는 행동이 훨씬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문득 예수님도 그러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리와 창녀,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그들의 자리까지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먼저 깨끗해지고 오라.”
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교회에서 설교만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숨어 있던 선입견 하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알게 모르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옷차림, 말투, 문신, 헤어스타일….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쉽게 평가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그 말씀을 다시 읽으니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내 기준으로 먼저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미국 교회를 나오면서 저는 작은 결심 하나를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보기 전에 그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외모보다 마음을, 모습보다 이야기를, 첫인상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며 살아가자.
교회의 문턱은 건물이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낮아졌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있느냐, 아니면 내가 보는 중심을 보고 있느냐?”
📖 오늘의 말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