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보이는 아침, 루아흐가 들려준 생명의 이야기



아파트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텅 비어 보이던 공터에 연둣빛 싹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손가락만 하던 작은 풀들은 따뜻한 햇살과 봄비를 먹고 자라더니, 어느새 사람의 허리 높이를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은 1미터가 넘는 풀들이 제법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들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바람이 잠잠해지면 다시 천천히 일어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평안해집니다.

풀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 같습니다. 흔들리고, 굽혀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그 움직임 속에는 살아 있는 것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생명의 리듬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여 주는 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풀들이 몸을 기울이며, 피부에 시원한 기운이 닿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저 들판의 풀들이 바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풀들은 몸을 흔들며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람이 이곳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정작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도, 희망도, 믿음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 또한 우리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분명히 남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의 표정이 달라지고, 희망을 발견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바람이 풀들을 움직이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움직입니다.

바람과 호흡과 영을 뜻하는 루아흐

성경의 히브리어 ‘루아흐(רוּחַ)’에는 바람, 호흡, 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풀을 움직입니다. 호흡은 손으로 붙잡을 수 없지만 우리를 살아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절망했던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에스겔서에는 생기를 잃은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 에스겔 37장 9절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던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나 일어섰습니다. 이 말씀에서 느껴지는 루아흐는 단순히 공기의 움직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은 것 같은 존재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보여 줍니다.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생명을 주고 움직이게 하는 힘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피조물을 통해 그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아침에 만난 작은 기적

오늘 아침에는 들판을 바라보다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토끼는 무성한 풀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작은 토끼 역시 같은 바람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풀도, 토끼도, 창가에 서 있는 나도 모두 생명을 선물로 받은 피조물입니다.

햇살은 들판을 비추고, 바람은 풀들을 흔들며, 토끼는 그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닙니다. 너무나 평범한 아침 풍경이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기적이 숨어 있습니다.

흙을 뚫고 올라온 작은 싹이 사람의 허리만큼 자라는 것도 기적입니다. 연약한 풀이 거센 바람에 몸을 낮추었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도 놀랍습니다. 작은 토끼가 자신의 길을 찾아 풀숲을 달리는 것도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다시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요.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백합니다.

“Life is beautiful. 삶은 아름답습니다.”

흔들려도 다시 일어서는 삶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예고 없이 거센 바람이 불어옵니다. 때로는 몸이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합니다. 바람 앞의 풀처럼 몸과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더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풀은 바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잠시 몸을 낮추고,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햇빛을 향해 일어섭니다.

그 모습은 흔들리는 것이 곧 약함은 아니라고 말해 줍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실패가 아니며,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것도 포기가 아닙니다.

들풀처럼 작고 연약했던 나에게도 생명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지나온 시간의 상처와 눈물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고,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제 나는 흔들려도 쉽게 꺾이지 않는 들꽃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나는 견디는 법을 배웠습니다.
현재의 나는 살아가는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미래의 나는 누군가에게 쉼과 희망을 전하는 따뜻한 바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생 후반전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

인생 후반전은 젊은 시절보다 조금 느리게 걷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천히 걷기 때문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바라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며, 평범한 하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나는 바람이 이끄는 방향을 신뢰하며 더 깊은 사랑과 감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호흡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창가에 서서 다시 흔들리는 풀들을 바라봅니다.

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내게 가장 깊은 진리를 들려줍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을 때 생명은 움직입니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풀은 춤을 추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생명은 노래합니다.

오늘도 바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게 하시는 창조주께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바람처럼,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긴 글을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치아로 오래오래 먹고 싶다 — 나이 들수록 소중해지는 치아 건강

동생의 힘든 치과 치료를 지켜보며 다시 생각하게 된 자연 치아의 소중함과 나의 치아 관리 이야기   얼마 전부터 찬물을 마시거나 뜨거운 음료를 마실 때 치아가 시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얼음물도 마시고 따뜻한 커피도 즐겼는데, ...

인기 글